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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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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정의: 김진유 과거 로그(미완) 그의 예식장은 12층이었다. 주차장에서 예식장으로 올라가려면 고층용 승강기를 이용해야 했는데 승강기의 정원은 15명, 두 대를 합해서 30명이었다. 승강기 앞에는 사람들이 열 명 남짓하게 서 있었고 방금 막 떠난 승강기 한 대는 이제 2층을 지나는 중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장을 텅 비운 승강기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작은 직사각형 틀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진유는 그들이 모두 올라탄 뒤에 마지막으로 몸을 밀어 넣었는데, 끄트머리에서 누군가 아, 밟지 마세요, 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고층 전용이었으니 12층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식장 입구와 접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진유의 선배이기도 하고 그의 선배이기도 한 장 형은 그 좁은 접수대 테이..
소음 뜨거운 햇빛으로 달궈진 먼지의 맛이 느껴졌다. 타플리카스는 모로 누워 천천히 부유하는 공기의 잔여물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휴일의 아침이라 비정상적으로 조용한 광경이 어울렸다. 무음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 같은 이질감을 주었다. 문득 나른함이 몰려와 눈을 다시 감으려던 찰나 희미한 진동이 감각을 일깨웠다. 멀리서 울리는 것이 아닌 하나의 벽 건너에서 생긴 일종의 생활 소음이었다. 어차피 평소 그가 일어나던 시간보단 늦었다. 탁자에 놓인 전자시계로 눈을 옮기니 과연 30분이나 더 낮잠을 잔 상태였다. 타플리카스는 서서히 매트리스 위에서 일어나 핸드폰 주변을 더듬었다. 어젯밤 던져둔 머리끈이 손끝에 걸렸다. 그는 먼저 뒤척임으로 엉킨 뒷머리를 대충 모아 묶었다. 충전이 끝난 핸드폰에는 휴일답게 쌓인 알람이 없으..
서울 어딘가 https://youtu.be/8SFo7A8sD04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계단을 비스듬히 올랐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 법한 폭의 계단은 짐을 들고 있으면 벌어진 손의 넓이도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한 발씩 걸어 오르니 이미 높은 계단이 더욱 높게 느껴졌다. 윤은 계단의 삼 분의 이 정도 오른 곳에 서서 숨을 골랐다. 체육관과 동아리를 그만둔 후 체력이 떨어진 것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러닝 정도는 해야겠다. 윤은 뻐근해진 두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근육을 풀어준 뒤 다시 손에 봉지 손잡이를 걸었다. 90도로 꺾어진 계단을 따라 마지막 토막을 걸어 오르는 동안 해가 절반쯤 가라앉은 도시의 경관이 보였다. 일정 범위 내로는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대로를 건너서는 빼곡하게 높아 바라보기조차 ..
콘스탄틴, 방랑자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마카이라는 담배의 브랜드를 몰랐다. 니코틴을 입에 달고 산 지가 벌써 몇 년째지만 그는 보통 쓴 것과 단 것으로만 담배를 구분했다. 어차피 매캐하게 폐를 채우는 감각은 어떤 브랜드이건 똑같았다. 이번 것은 향이 조금 쓰다. 깊게 빨아들였다가 입술을 떼고 바닥을 향해 천천히 공기를 밀었다. 잿빛의 담배 연기가 브루클린의 더러운 길거리 위로 흩어졌다. 젊은 흑인 무리가 맥주병을 들고 눈앞을 지나쳤다. 가장 어려 보이는 것과 눈이 마주쳤지만 찰나뿐이었다. 패싸움과 술주정이 일상인 브라운스빌에선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좋았다. 미카엘. 빛이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만 열린 문틈 사이로 금빛 눈이 번뜩였다. 다시 한번 푸우, 길게 숨을 뱉고 담배를 길거리 위로 뱉었다. 그러지 ..
소냐그놈 여자가 담뱃갑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몇 개비 올라온 것 중 끝에 서리가 옅게 언 것을 입에 물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여자는 잠깐 행동을 멈추었다가 인상을 찌푸리고 외투의 주머니를 헤집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외투 안주머니까지 뒤지고 나서야 그녀는 물고 있던 담배를 담뱃갑에 다시 집어넣었다. Блять. 소냐가 서 있는 다리 밑으로 거센 돌풍이 불어왔다. 여전히 날씨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외투 깃을 세우고 다리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같은 날에는 러시아인이라도 거리로 나오는 사람은 없다. “Акинский!” 문이 닫히자 따듯한 공기가 노출되어 있던 손가락 끝에 달라붙었다. 언 몸이 천천히 녹았다. 총기상까지의 고작 5분 거리에도 눈은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