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예식장은 12층이었다. 주차장에서 예식장으로 올라가려면 고층용 승강기를 이용해야 했는데 승강기의 정원은 15명, 두 대를 합해서 30명이었다. 승강기 앞에는 사람들이 열 명 남짓하게 서 있었고 방금 막 떠난 승강기 한 대는 이제 2층을 지나는 중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장을 텅 비운 승강기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작은 직사각형 틀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진유는 그들이 모두 올라탄 뒤에 마지막으로 몸을 밀어 넣었는데, 끄트머리에서 누군가 아, 밟지 마세요, 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고층 전용이었으니 12층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마자 식장 입구와 접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진유의 선배이기도 하고 그의 선배이기도 한 장 형은 그 좁은 접수대 테이블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 형은 몸을 숙였다가 급하게 들어 올려 누군가와 악수했고 방명록이 채워지는 동안 급하게 장부를 적기도 했다. 사방이 트여 있어 나는 앞으로 걷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했다. 잠깐 고개를 든 장 형이 진유와 눈이 마주치자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그들이 알던 때와는 다르게 장 형의 입가에는 희미한 주름이 잡혔는데 그것이 대학을 다닐 때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려주는 신호탄 같아 진유는 웃음 지을 수가 없었다. 좀 이따가 대화하자. 도대체 언제 문자 했는지 핸드폰에는 장 형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승강기는 몇 번이고 도착했다. 하객들이 자꾸만 물밀듯이 들어와 진유의 어깨와 등을 치고 지나갔다. 그때 결혼식이 참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진유는 로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작게 표지만 붙어 있던 비상구로 빠져나갔다.
2년 반을 사귀었다. 연애 기간만 단순 계산해도 그랬고, 함께 공부한 시간은 한참 더 길었다. 일 년 재수했는데, 사실 빠른이라 스물이란 나이에 들어온 게 맞은, 그러나 너보다 생일이 11개월이나 빠르니 나이 차가 제법 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던 그와 만난 게 9년 전이라는 소리였다. 그때 진유는 형이라고 불러드려? 라고 답했다. 같잖은 나이를 따지는 게 웃겨서 한 말이었는데 그는 보조개를 드러내면서 웃었고 너가 말하는 형은 너무 뻣뻣하게 들려서 싫다고 했다. 그걸 계기로 친해졌다는 걸 지금은 믿을 수 없다. 이 나이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 나이에 민감하신가 봐요, 하고는 말 테니까. 그러고는 잊을 것이다. 다만 신입생 뒤풀이 때는 그의 대답이 제법 웃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잔을 자주 주고받았다. 그의 말마따나 그들은 이제 스물이었다. 웃긴 것과 이상한 것을 구분하기에는 조금 미련했다.
늦가을이라서 비상계단은 제법 서늘했다. 진유는 검은 코트를 잘 여며 추위를 차단했다. 예식은 12시 반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10분 정도만 있으면 다들 예식장 안에 자리를 잡을 터였다. 아직까지는 로비의 소음이 두꺼운 비상구 철문도 뚫었고 간간이 퍼지는 웃음소리가 스며들어 계단을 울렸다. 진유는 그곳이 조금 조용해지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시멘트벽에 등을 기대자 찬기가 코트 안에 숨어 있던 열을 훔쳐갔다. 식장은 히터를 강하게 틀어놨고 사람들의 체온으로 더욱 후끈하게 달궜다. 김진유는 그 열기가 싫었다. 사람을 흥분하게 하고, 열감과 같잖은 무리의식에 취하게 만드니까. 비상계단의 냉기와 고요는 그의 뇌를 점자 자극해주었다. 이제 머리가 좀 돌았다. 왜 이 식장에 왔는지, 뭘 원하는 건지는 몰라도 못 할 말을 꺼낼 정도는 아니다. 잇새 사이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는 제대로 덫에 들어온 쥐와 같았다.
진유와 그는 같은 전공에 같은 학번, 비슷한 거리에서 자취한다는 이유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는 술에 대해 잘 알았다. 무엇이 더 맛있고 무엇이 더 비싼 술인지 구분하는 것에 타고 났었다. 이제 막 알코올의 규제가 풀린 신입생들은 맛도 모른 채 술병을 입에 꽂아두는 걸 좋아했고 당연하게도 술에 대해 잘 아는 그는 술자리의 유명인사였다. 가장 맛있는 폭탄주, 비율, 훅 가게 만드는 법. 그런 것들이 그의 주변에서 유행했다. 그때는 진유도 예외 사항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준 술은 정말로 맛있었다. 달큰하고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게 몇 모금 마시면 곧바로 알딸딸해져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모두가 일어나서 음을 다 틀려가며 유행곡을 불렀다.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또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그러고 나면 그는 진유를 보며 보조개를 드러내고 웃었다.
덜컥 소리와 함께 철문의 손잡이가 돌아갔다. 억지로 그 무게를 밀어낸 것은 장 형이었다. 그는 철문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더니 사람이라곤 진유 하나뿐인 걸 확인하고 발을 들였다. 벌써 10분이 지났나 보다. 장 형의 등 뒤는 제법 한산했다.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어떡해. 너 식권도 안 받아 갔지?”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요. 축의금 내려고 했더니 깜박하고 돈을 안 찾아왔지 뭐야. 급하게 현금 좀 뽑아오느라 그랬어요.”
“계단으로 다녀온 거야? 여기 12층인데?”
“아뇨. 8층에 은행이 있다고 해서.”
얼굴색도 변치 않으며 한 거짓말에는 다 증거가 있었다. 김진유는 올라오기 전에 주차장 벽면에 붙은 입점 목록을 보았고, 8층에 은행 사무실이 있는 걸 확인했다. 거기서 진짜 돈을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바는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 근거를 모으는 건 그를 만나며 생긴 습관이었다. 비밀 연애로 남아야 했던 그와의 교제 기간 동안 김진유는 장 형에게 언제나 거짓말을 했다. 함께 잠든 날에는 피곤해 보여서 재워준 것뿐이라고, 키스한 후에는 담배를 뺏어 피워서 같은 냄새가 나는 거라고, 그와의 섹스 후에는 그저 뛰어왔다고 꾸며내는 정도의 사소한 일들이었다. 고작 한 번 더 거짓을 말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었다. 진유는 더 말을 하는 대신 이틀 전 신화폐로 찾은 오 만원 권 네 장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예진이 앞으로 둬요.”
“준혁이가 아니라?”
“그 새끼, 발이 얼마나 넓은데. 나 아니어도 줄 사람 많아요. 난 내 후배부터 챙기려고.”
진유는 장 형의 가슴팍에 봉투를 떠넘기듯 안기고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너 아직도 못 끊었냐? 장 형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도 그는 절반이 빈 갑에서 대를 꺼내와 입에 물었다.
“여기 건물 안이야.”
“알아요. 물고만 있으려고.”
“돈 아깝게 그건 또 뭔 짓이래. 그냥 뱉어, 인마. 누가 보면 오해해.”
“오해하라지. 어차피 스쳐 지나갈 얼굴들인데.”
종이 필터를 씹을 때마다 침이 스며들어 질겨졌다. 둔중한 무게감을 턱으로 느꼈고 밍밍한 종이의 맛을 혀로 느꼈다. 원래는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그가 다가와 키스해줬다. 연기를 빼앗고 숨을 빼앗아서 담배를 다 먹기도 전에 그저 재가 되게 만들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굳이 물고 있던 담배를 가져가 물었다. 그는 담배를 피울 때 첫입을 깊게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뱉는 연기가 뜨겁고도 길었다. 그만 좀 방해하라고 화를 냈더니 한 말이 명문이었다. 너가 입에 길고 흰 걸 물고 있으면 꼴려서 미치겠어. 별 지랄이 따로 없었다. 그때는 그가 연기를 내뱉는 게 그렇게나 섹시하게 느껴졌다는 점도, 아주 쌍으로 미친 지랄이었다.
아, 씨발. 맛 떨어지게.
진유의 미간에 옅은 골이 패였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에서 비릿한 흙이 섞인 듯한 역한 쓴맛이 느껴졌다. 엿 같은 기억 탓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담배만 물면 그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 담배를 배운 셈이었으니, 쉽게 잊을 리도 만무했다. 그럼에도 뱉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 하나 때문에 배운 것을 버려야 한다니, 폐가 썩어도 담배를 놓고 싶지 않았다. 감정적인 생각인 건 잘 알았다. 그래도 김진유는 담배를 뱉지 않고 질겅거리며 씹었다. 그게 그의 좆이라도 되는 것처럼 성한 구석 하나 없게 이로 꼼꼼히 짓눌렀다.
“괜찮냐?”
“안 괜찮을 게 뭐 있어요? 나 기분 좋아요. 동기 놈들이 결혼하는데 손바닥 박살나게 박수 쳐야 할 마당 아닌가.”
“진유야. 지금 너 누가 봐도 기분 더러워 보인다.”
장 형의 목소리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마침 희미한 박수 소리가 고요한 둘의 사이를 관통했다. 신랑이 등장했나 보지. 진유는 대답하는 대신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여전한 찬기가 몰려왔다. 늦가을이래도 추운 날씨는 아니란 예보가 있었으나 복도와 분리된 계단은 유독 추웠다. 창밖으로는 주말의 서울 거리가 차로 그득한 게 보였다. 그것은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서울역으로, 가장 낮은 건물에서 높은 건물까지 길게 이어졌다. 돌아갈 때 차 막히겠다. 김진유는 그런 생각을 하고 담배 연기를 뱉듯이 한숨을 길게 뿜었다. 저 사이에 그와의 추억 혹은 지뢰 같은 기억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걸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건 진유뿐이었다. 날이 추운데 그와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만 났다. 기억을 덮을 기억이 없어서 감각은 흐릿해지고 감정만 선명해졌다.
“김진유.”
장 형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눈을 감았다. 다정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양심을 찔렀다. 장 형은 상황 파악은 느려도 분위기 파악에 기민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진유와 그, 장 형 셋이서 실험하고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르며 온갖 변천사를 다 겪어봤었으니 지금 이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둘이서 하나를 빼고 무언가를 하다가, 둘이 깨져버렸을 때 남겨진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그들의 청춘과 기억을 깨트리는 어떤 일을 오직 장 형만 몰랐다. 그의 얼굴에 불안이 완연했다. 혹시나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공포도 있어 보였다. 장 형은 그 불안과 미안함 때문에 이 바쁜 결혼식에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축의금을 받고 있겠지.
착하디 착했다. 장 형은 조금 바보 같을 정도로 친절했다. 구렁이 같은 그와 예민한 진유 사이를 긍정과 착함만으로 견뎌낸 사람이었다. 장 형은 실패하는 실험과 이상한 보고서를 보고서, 늦어져만 가는 박사 학위 취득에도 괜찮아,를 입에 달고 웃었다. 무엇이든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친한 후배들이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섹스한 끝에 사귀었다가 결혼을 이유로 헤어졌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괜찮을 수가 없는 관계도 있다는 걸, 하나는 버려지고 하나는 정상성을 찾아 돌아갔다는 걸 그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철문 뒤로 뭉개진 박수 소리가 들렸다. 신부가 등장했을 것이다.
“···형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도 마찬가지지. 식 안 봐?”
“지금 식장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자리도 없을 텐데 난 그냥 밖에서 기다리려고. 어차피 얼마 안 걸리잖아요.”
“얼마는 무슨, 지금부터도 40분은 족히 걸릴걸?”
“그러니까. 그거 40분을 못 기다리겠어? 우리가 랩실에서 때워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금방이에요. 형이나 돌아가서 좀 쉬셔. 난 멀미 가라앉히고 갈 테니까.”
다시 거짓말을 얹었다. 필터가 납작하게 눌린 담배를 꺼내 손바닥 안에서 구겼다. 아 멀미였어? 장 형이 어색한 말투로 떠듬거렸다. 더는 끌고 갈 거리도 없으니 곧 돌아갈 모양새였다. 질척하고 불쾌한 느낌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진유는 입술을 이로 약하게 짓눌렀다. 언젠가 터졌던 피딱지가 이 끝에 걸렸다.
“그럼······ 그래도 빨리 들어와. 준혁이가 너 기다렸어. 식권도 꼭 받아가고.”
“그 새끼가 뭔 일로 나를 기다린대. 3분만 늦어도 칼 같이 버리고 가던 놈인데. 나까지 들고 버진로드 걸을 것도 아니면서,”
“인마, 입조심 좀 해라. 기쁜 날이잖아.”
“하.”
장 형은 힘겹게 철문을 끌어당겼다. 최근에 터졌다던 디스크가 영 말썽인 듯했다. 그는 어깨로 문을 겨우 열어젖히고 로비 속으로 사라졌다. 계단층은 다시 조용해졌다. 진유가 쯧 혀를 찼다. 손에 들고 있는 담배가 영 찝찝했다. 손톱으로 꾹 누르자 종이가 힘없이 밀려 나갔다. 하긴. 버진로드가 뭔 소용인가. 진유는 아래층으로 몸을 돌렸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유독 컸다. 구두를 신지 말 걸 그랬다. 그냥 평소처럼 캔버스화를 신었어야 했다.
버진은 개뿔 고추가 좆나 헐어서 생으로 뜯어도 될 새끼인데, 버진로드. 개뿔.
온몸으로 부딪히듯 문을 열고 나간 곳은 조용하고 하얀 복도였다. 김진유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예진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그 말 한마디를 못 했다. 그만 웃으면서 정리하고 자신에게는 정리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떠나간 그 생글생글한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 게 후회됐다. 아끼는 후배의 청첩장을 받고도 웃지 못하게 만든 그가 미웠다. 사실은 그 후배조차, 그냥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에 대고 박수 쳐주는 모두가 미웠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그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이런 등신 머저리 어른스럽지도 못한 찌질이 개좆새끼,라고. 들고 있던 담배가 꽉 짓눌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